2017-04-01

[2017.04.01] 언젠가 나의 소중했던 사람을 위하여

  봄이 왔다. 어릴때 한페이지 씩 넘어가던 시간과는 다르게 요즘은 한뭉텅이의 서류다발처럼 시간이 가는 걸 실감한다.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차리면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수십가지의 일이 지나가고 난 뒤의 후폭풍을 맞고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점점 시간이 빨리 사라지는 폭탄같이 내 시간은 조금씩 가속해왔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어떤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내 소중한 사람에 대해 기억난 밤에, 내가 새로운 블로그에 첫페이지에 꼭 쓰고싶어진 사람의 이야기다. 내 인생의 많은 플롯들에 어울려 웃고 놀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글만은 오직 그만을 위해 쓰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 10년전 쯤 전에, 먼 옛날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한달전처럼 느껴지는 그 때 쯤,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을 적의 일이다. 그 때 넷상으로 한 명의 사람을 알게되었다. 내가 서툰 글솜씨로 ─지금생각해보면 진짜 그때 글들은 글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올리던 글에 대해 칭찬을 마지않아 주던 한 남자였다. 나와 그는 금방 친해졌다. 새글이 올라올 때마다 그는 내 블로그에 들려서 감상을 적어줬고 나 또한 그랬다. 어릴 적의 나는 외로웠고 칭찬에 목마르던 시절이라 더 그에게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취미를 가진 우리 두 사람은 나만 그렇게 느꼈는 지 몰라도 서로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였던 것 같다. 모든것이 서투르다는 점까지도. 그는 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만나기는 힘들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그는 굉장히 매너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며 글을 썼다. 내 블로그의 글도 그의 영향을 받아 어느정도 정갈한 차림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넷상의 나에게 치장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갔다.

  그렇게 치장하던 나는 어느새 내가 나로 있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 글이 내 글같지 않아지면서 미세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살면서 많은 유명한 글들을 읽으며 내 수준을 발견하면서 또한 점차 글을 쓰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점차 나는 글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간간히 안부인사정도, 생존신고 정도,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고 알리는 정도의 짧은 한두문장정도로 포스팅을 끝내버리려고 했다. 너무 허전한 마음에 어딘가에서 구했던 그림이라도 한개 꽉채워 올리는게 나의 블로그였다.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수년이 지나고 나는 넷 방랑벽이 있던 블로그를 여러차례 옮겼고, 왠지 모르게 그 사람도 그랬다. 결론부터 하자면 서로에게 연락을 잘 주고받지 않게되었다. 내 탓일지도 모른다. 또는 그의 탓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예전만큼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게되고,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고, 귀찮아지고, 관심이 없어졌으리라. 아마 그 누구의 탓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 잘못이다.

  내가 아예 글조차 쓸수 없게 되었던 상황에, 그에게 안부인사를 짤막하게 남기고 난 떠났다. 가끔 그의 블로그를 확인했지만 그는 블로그를 옮길때마다 주소를 남겨줬고 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그의 존재를 미약하나마 느껴갔다. 그의 글들은 어느새 내가 알던 그의 글이 아니라, 또 그의 취미생활에 관련된 것들이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었지만 그런 거라도 그가 잘 지낸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면서 찾아보곤 했다. 예전같지 않은 관계여도, 그 관계에서 나는 옛날의 나를 찾아내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다시 글을 쓰자! 라는 마음을 먹게 되기까지 수 년이 지났고, 그렇게 돌아왔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많이 늦었을까? 내가 그에게 답신을 한지 몇년이 되었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가 온지 몇달이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찾아본 그의 블로그에는 전혀 그의 글이 아닌 글만이 있었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렇게 지내던 와중에 이 새벽에 갑작스레 그가 생각났다. 외국인 이름을 가지고, 외국에 산다고 했던 그 사람. 얼굴도 본적 없는데 내가 상상해서 혼자 만들어낸 그의 모습은 언제나 소년이었고, 언제나 우린 친구로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씁쓸하기도 하고 커져버린 내 자신에 대해 안타깝기도 하다. 연락하려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이 망망대해같은 인터넷에서 그에 대해 찾는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흔하게 넘어가는 사람관계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에게도 소중한사람은 많았다─지금은 거의 없지만─ 지금 연락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언젠가 내 글에 다른 친구의 얘기를 쓴적이 있는데, 그때 썼던 마음과 지금 그를 생각하면서 쓰는 글은 완벽하게 동일한 감정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어딘가 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내가 보고있는 것들을 어디선가 보고있으리라고 여기면서 살 거라고. 그라면, 나처럼 힘들지 않고 무엇이라도 이겨내면서 살 것이다.

  내 인생은 계속해서 가시밭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쳤다. 글을 쓰는 것도 마지막처럼 생각하면서 항상 쓴다. 내일은 없다. 항상 내일만 바라보면서 살았던 사람이니까 조금이나마 이제 오늘을 긍정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인생을 뿌옇게 가리고 있던 우울증이 사라졌고, 시야가 확 터지고 나서야 그 암흑기 속에서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 잃어버렸단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런 소중한 것들이 없어졌다고해서,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자신에게 그가 내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어서이다. 그는 내 글의 첫번째 독자였고, 첫번째 팬이었고, 첫번째로 내가 팬이된 사람이다. 내가 앞으로 어디서 글을 쓰게 되더라도 난 그를 기억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 글의 어느 구석에는 그의 영향이 자리잡아서 내게 항상 조언해주고 도와주고 칭찬해주고 있다고 여기고 싶은 내 마음이다.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를 그냥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내 블로그의 이름은 그때도 지금도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까. 기다림에 끝에서 지금 이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 그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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